한국
한국의 성지에는 산사와 무속의 사당이 한 산에 나란히 자리한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서울의 산자락에 있는 사당부터 남해안 섬의 암자까지 다섯 지역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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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테마의 장소
사찰해인사
- 액막이
몽골군을 물리치려는 온 나라의 염원으로 새긴 팔만대장경과, 그것을 지켜 온 장경판전이 있는 절입니다.
사찰석굴암
- 가정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 751년부터 지은 석굴 사원으로, 이승의 부모를 위한 불국사와 한 쌍을 이룹니다.
사찰통도사
- 액막이
5대 적멸보궁의 첫째로 꼽히는 절로,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고 뒤편 금강계단의 사리를 향해 서 있습니다.
사찰토함산 불국사
한 사람이 이승의 부모를 위해 세운 절이며,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세웠습니다.
사찰송광사
큰스님이 많이 나왔다 하여 승보사찰로 불리는 절로, 통도사·해인사와 함께 삼보사찰을 이룹니다.
사찰법주사
- 기타
553년에 창건되어 미륵신앙의 중심 도량으로 자란 절이며, 우리나라에 하나뿐인 목탑 팔상전이 있습니다.
사찰봉황산 부석사
용이 된 여자가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서 도둑을 몰아냈다는 자리의 절입니다.
사찰조계사
- 학업·시험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의 총본산으로, 도심 한복판에 있으면서 수능 전날 회향하는 입시 기도를 해마다 올립니다.
사찰봉은사
- 가정
광평대군이 죽자 그 부인 신씨가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절로, 뒤에 선종의 수사찰이 되었습니다.
사찰마곡사
자장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태화산의 천년 고찰로,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비탈을 따라 겹쳐 서 있습니다.
사찰금정산 범어사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가 산 이름과 절 이름을 함께 지은 곳입니다.
사찰화엄사
임진왜란에 불탄 장륙전을 1702년에 다시 세우자 숙종이 직접 쓴 편액을 내려, 그때부터 각황전이라 불린 절입니다.
사찰천등산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서 있는 절입니다.
사찰분황사
- 건강
눈먼 아이가 눈을 떴다는 기도의 상대가 있던 절입니다.
사찰두륜산 대흥사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져 나라의 제향을 받게 된 절입니다.
사찰도솔산 선운사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준 값으로 소금을 받던 절입니다.
사찰지리산 쌍계사
눈이 쌓였는데 꽃이 피는 땅을 찾다가 호랑이가 안내한 자리입니다.
사찰오대산 월정사
창건자가 문수보살을 친견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한 자리에서 시작된, 조계종 제4교구 본사입니다.
사찰금산사
진표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신 절로, 3층으로 지은 미륵전은 미륵이 펼칠 용화삼회의 설법을 뜻합니다.
사찰해동용궁사
- 소원 성취
바다에 붙어 있는 한국 삼대관음성지의 한 곳입니다.
사찰황악산 직지사
아도가 다른 절에서 이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 데서 이름이 난 절입니다.
사찰조계산 선암사
두 가지 창건설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믿을 만한지를 기록이 직접 밝혀 둔 절입니다.
사찰설악산 신흥사
이름이 세 번 바뀌었고, 그때마다 자리도 함께 옮긴 절입니다.
사찰덕숭산 수덕사
건립 연대가 분명히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가운데 하나인 대웅전을 가진 절입니다.
사찰백암산 백양사
경 읽는 소리를 듣고 흰 양들이 몰려왔다 하여 이름을 고친 절입니다.
사찰구인사
1945년에 세워진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으로, 만여 명이 함께 들어가는 5층 콘크리트 대법당이 있습니다.
사찰낙산사
네 차례 불에 타고 그때마다 다시 세워졌으며, 2005년 산불로는 보물이던 동종까지 잃은 절입니다.
사찰지리산 실상사
구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이 열리면서 세워진 절입니다.
사찰호거산 운문사
원광이 세속오계를 지어 준 내력이 시작되는 절입니다.
사찰만덕산 백련사
송광사의 수선사와 쌍벽을 이루던 결사가 맺어진 절입니다.
사찰운악산 봉선사
왕비가 죽은 임금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여든아홉 칸으로 다시 세운 절입니다.
사찰동화사
팔공산에 심지가 창건한 절로, 절 둘레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해 동화사라 고쳐 불렀다고 전합니다.
사찰팔공산 은해사
임금의 태실을 봉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은 절입니다.
사찰등운산 고운사
한 사람의 호를 따서 이름의 한자가 바뀐 절입니다.
사찰정족산 전등사
왕비가 시주한 옥등 하나 때문에 이름이 바뀐 절입니다.
사찰달마산 미황사
소가 마지막으로 멈춘 자리에 세우고, 그 울음소리에서 이름을 딴 절입니다.
사찰능가산 내소사
언제 세웠는지도,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도 모르는 절입니다.
사찰재약산 표충사
사당의 사 자가 절의 사 자로 바뀌면서 이름이 정해진 절입니다.
사찰설악산 백담사
청봉에서 절까지 물굽이를 세어 백 개가 나온 자리에 세우고 그 수를 이름으로 삼은 절입니다.
사찰모악산 불갑사
백제 최초의 절이라는 이야기를 기록이 받아들이지 않는 절입니다.
사찰월출산 도갑사
여기서 출가한 사람이 돌아와 구백예순여섯 칸으로 다시 세운 절입니다.
사찰냉산 도리사
겨울인데도 꽃이 만발한 것을 보고 세웠다는 신라 최초의 절입니다.
사찰함월산 기림사
천축국에서 온 승려가 세우고 원효가 이름을 바꾼 절입니다.
사찰반야산 관촉사
삼십칠 년에 걸쳐 깎고도 세우지 못하던 은진미륵을, 아이들의 흙장난을 보고 세웠다는 절입니다.
사찰북한산 진관사
칠성각 벽체 안에서 태극기가 나온 절입니다.
사적문무대왕릉
- 액막이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바닷속 바위에 장사 지낸, 신라 문무왕의 능입니다.
사찰월출산 무위사
벽화가 스스로 그려진 해를 적어 둔 절입니다.
사찰봉미산 신륵사
현존하는 유일한 고려시대 전탑이 서 있는 절입니다.
사찰계당산 쌍봉사
삼층목탑의 모습을 전하던 유일한 건물이 촛불로 불탄 절입니다.
사찰내연산 보경사
못에 묻은 거울에서 이름을 가져온 절입니다.
사찰안산 봉원사
갑신정변의 주동 인물들이 개화 사상을 배운 절입니다.
사찰계룡산 갑사
창건에 대한 이야기가 셋인 삼국시대 절이며, 영규가 출가한 곳입니다.
사찰갓바위
- 학업·시험
- 소원 성취
팔공산 관봉 꼭대기에 앉은 통일신라의 석불로, 해마다 수능을 앞두고 가장 붐비는 기도처입니다.
사찰골굴사
자연 굴을 이용해 만든 열두 개의 석굴이 있는 절입니다.
사찰관룡산 관룡사
용 아홉 마리가 올라가는 것을 보고 절과 산의 이름을 함께 지었다는 곳입니다.
사찰한라산 관음사
- 액막이
한라산 기슭의 조계종 제23교구 본사로,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이 세운 절입니다.
사찰정암사
- 액막이
자장이 부처의 두골과 어금니, 사리 백 과를 모셨다고 전하는 적멸보궁으로, 국보 수마노탑이 그 뒤편에 서 있습니다.
사찰팔공산 파계사
관음보살상 안에서 임금의 도포가 나온 절입니다.
사찰동리산 태안사
선문구산의 하나인 동리산파의 중심 사찰이 된 절입니다.
사찰운주사
- 액막이
도선이 기울어지려는 국토를 바로잡으려 하룻낮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웠다고 전하는 절입니다.
사찰용문산 용문사
마당의 은행나무가 조선 세종에게서 벼슬을 받은 절입니다.
사찰보리암
- 소원 성취
금산 중턱의 관음 기도처로, 낙산사 홍련암·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 기도처로 꼽힙니다.
사찰칠현산 칠장사
- 학업·시험
도적 일곱이 현인 일곱이 되었다는 데서 산과 절의 이름이 나온 곳입니다.
사찰지리산 대원사
비구니들이 참선하는 대표적인 선원으로 꼽히는 절입니다.
사찰계룡산 동학사
사육신과 단종의 초혼제를 지내던 자리이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강원이 있는 절입니다.
사찰보문사
- 소원 성취
남해 보리암, 낙산사 홍련암과 함께 3대 관음 기도처로 꼽히는 절로, 바다에서 건져 올린 나한상을 모신 석실이 있습니다.
사찰삼각산 흥천사
태조가 죽은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 동쪽에 백칠십여 칸으로 세운 절입니다.
사적천보산 회암사지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 이백예순여섯 칸으로 지었다가 폐사가 된 절터입니다.
사찰홍련암
- 소원 성취
의상이 관음보살을 만났다고 전하는 자리에 세운 암자로, 법당 마루 밑으로 바닷물이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찰상원사
- 건강
705년에 문을 연 오대산의 절로, 세조가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오대산 문수 신앙의 중심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사찰팔공산 부인사
피난시켜 온 초조대장경 경판을 1232년 몽골 침입으로 모두 잃은 절입니다.
사찰오봉산 청평사
아들이 아버지의 절을 고쳐 지으며 산 이름까지 바꾼, 고려 정원이 남아 있는 절입니다.
사찰향일암
- 소원 성취
우리나라 4대 해수관음기도도량의 하나로, 이곳에서 보는 일출이 아름다워 「해를 향한다」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사찰만수산 무량사
김시습이 말년을 보내다 세상을 떠난 절입니다.
사찰운길산 수종사
종소리인 줄 알았던 것이 굴 안의 물방울 소리였다는 데서 이름이 난 절입니다.
사찰용주사
- 가정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옮기면서 그 곁에 다시 세운 절로, 부모의 은혜를 설한 경전의 목판이 이곳에 있습니다.
사찰고령산 보광사
- 가정
영조가 자기를 낳은 어머니의 무덤을 위해 원찰로 삼은 절입니다.
사찰삼각산 화계사
이백오십 년 사이에 두 사람의 대원군이 각각 시주한 절입니다.
동굴산방굴사
산방산 남쪽 절벽의 굴 안에 불상을 모신 자리로,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을 산방덕의 눈물이라 부릅니다.
사찰비슬산 용연사
전란을 피해 옮겨졌던 통도사 부처사리의 일부를 돌아오는 길에 모셔와 봉안한 절입니다.
사찰상왕산 개심사
창건 기록 한 문장 안에 서로 맞지 않는 두 연대가 들어 있어, 언제 시작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절입니다.
사찰마니산 정수사
건물 서쪽에서 맑은 물이 솟는 것을 보고 이름을 고친 절입니다.
사찰북한산 승가사
인도에서 당나라로 건너간 승려의 초상을 돌에 새겨 모신 절입니다.
신사·사당송당 본향당
- 액막이
제주 각 마을 본향당신들의 부모신을 모신 당으로, 그 자손이 섬 곳곳의 당신이 되었다고 본풀이가 이릅니다.
사찰봉정암
- 액막이
설악산 소청봉에 있는 암자로, 자장이 모셔 온 진신사리를 봉안했다고 전하는 5대 적멸보궁의 하나입니다.
사찰비슬산 대견사
1917년에 폐사가 되었다가 2014년에 다시 절이 된 자리입니다.
사찰치악산 구룡사
아홉 마리 용이 살던 못을 부적 한 장으로 말렸다는 창건 설화를 가진 절입니다.
사적산천단
한라산 정상에서 지내던 산신제를, 얼어 죽는 사람이 나오자 산 아래로 옮겨 온 제단입니다.
사찰백운산 용궁사
- 자녀·순산
흥선대원군이 이름을 바꾼 절이며, 수령 천삼백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사찰앞산 은적사
왕건이 사흘 동안 숨었던 굴이 있는 자리에, 숨을 은 자를 써서 지은 절입니다.
신사·사당남이장군 사당
- 건강
- 액막이
스물일곱에 모함으로 참수된 장군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사당입니다.
영산태백산 천제단
- 기타
산 정상에 돌을 쌓아 만든 하늘 제사의 단으로, 해마다 개천절에 천제를 올리며 신라 때부터 나라의 제사가 있던 곳입니다.
사찰약천사
- 건강
약수가 흐르는 절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서귀포 대포동의 절입니다.
사찰팔공산 북지장사
건물의 본래 이름이 상량 기록 안에 이백오십 년 넘게 남아 있다가, 해체 수리 때 드러난 절입니다.
사찰불탑사
- 자녀·순산
원나라 기황후가 왕자를 얻으려 절을 짓고 사자를 보내 불공을 드렸다는 원당사 터의 절입니다.
사찰마이산 탑사
- 액막이
이갑룡이 평생 쌓아 올린 돌탑들이 서 있는 절로, 백여덟 기 가운데 여든 기 남짓이 남아 있습니다.
사찰태백산 망경사
문수보살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그 석상을 모시려 지은 절입니다.
사적강화 참성단
- 기타
단군이 하늘에 제를 올리려고 쌓았다고 전해 오는 제단으로, 고려와 조선에서는 나라의 제사를 지냈고 지금도 개천절마다 제례가 열립니다.
사찰치악산 상원사
꿩이 종을 세 번 울려 은혜를 갚았다는 이야기로 산 이름을 바꾼 절입니다.
사찰고려산 백련사
흰 연꽃이 떨어진 자리라서 백련사가 된 절입니다.
신사·사당궤네깃당
해마다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올리는 돗제를 지내 온, 송당 본향당 여섯째 아들의 당입니다.
사찰오대산 중대 적멸보궁
- 액막이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자리여서 법당 안에 불상을 두지 않는, 오대산 중대의 보궁입니다.
신사·사당해신당
- 액막이
바다에 빠져 죽은 처녀의 원한을 풀기 위해 세운 서낭당으로, 나무로 깎은 남근을 제물로 올려 왔습니다.
사찰최정산 남지장사
팔공산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자리에 있다 하여 남이라 불리게 된 절입니다.
신사·사당와흘 본향당
송당 본향당신의 열한째 아들과, 사이가 틀어져 한쪽 구석에 따로 앉은 여신을 함께 모신 당입니다.
사찰법화사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 제주에서 번창했던 큰 절의 자리로, 18세기 전기에 불타 없어졌다가 1987년에 다시 세워졌습니다.
신사·사당인왕산 국사당
- 자녀·순산
- 건강
- 액막이
남산에 있다가 1925년 일제의 압력으로 인왕산 기슭에 옮겨 온 굿당으로, 지금도 한 해 백여 차례 굿이 열립니다.
사적현충사
충무공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1706년에 세운 사당으로, 일제강점기에 퇴락한 것을 1932년 국민 성금으로 다시 세웠습니다.
사찰도선사
- 소원 성취
도선이 862년에 창건하고 바위를 갈라 새겼다는 마애관음보살상이 있으며, 영험이 있다 하여 축수객이 끊이지 않는 절입니다.
사적문경새재
- 학업·시험
영남에서 한양으로 넘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세 개의 관문이 6.5km에 걸쳐 이어집니다.
사찰신원사 중악단
- 소원 성취
조선이 세 산에 두었던 산신 제단 가운데 유일하게 남은 중악단이 신원사 경내에 있습니다.
사찰연주대
관악산 절벽 끝의 암자로, 고려를 그리며 송도 쪽을 바라보고 통곡했다는 이들에게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신사·사당대관령 성황사와 산신각
- 건강
- 액막이
대관령 마루의 산신당으로, 농사와 질병과 가뭄과 길 위의 안전을 주재하는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자리입니다.
신사·사당동관왕묘
- 액막이
임진왜란 뒤 관우를 모시려 세운 사당으로, 서울의 네 관왕묘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사찰간월암
무학대사가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는 암자로,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립니다.
자연 명소하회마을 삼신당 신목
- 가정
하회마을 한가운데 선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로, 아기를 점지한다는 삼신을 모신 당입니다.
사찰도솔암
선운사에 딸린 암자로, 절벽에 새긴 높이 13m의 마애여래좌상과 금동 지장보살 좌상이 있습니다.
사찰고란사
백제가 무너진 뒤 그 후예들이 세운 절로, 뒤편 벼랑에 자생하는 고란초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영산노고단
성모천왕에게 올리던 산신제가 시작된 자리로, 제사는 노고단에서 남악사로, 다시 화엄사 곁으로 옮겨 다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