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 부석사

사찰 · 경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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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용이 된 여자가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서 도둑을 몰아냈다는 자리의 절입니다.

Muryangsujeon, the National Treasure hall of Buseoksa in Yeongju.
ko:Excretion /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KR)

기본 정보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봉황산 부석사는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에 있는 절입니다. 676년 2월에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았습니다. 창건 설화에 따르면,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러 간 의상이 등주 해안의 어느 신도 집에 머물렀을 때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을 발하게 하였고,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습니다.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오백 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는데,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창건 후 의상은 이 절에서 사십 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과 부석사 조사당이 있으며, 2018년 6월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하나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유래와 역사

부석사는 676년 2월에 의상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의 중심 사찰로 삼았습니다.

창건 설화는 이렇습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을 타고 등주 해안에 도착하여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는데,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용으로 변한 선묘는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습니다.

의상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펼 수 있는 땅을 찾아 봉황산에 이르렀으나 도둑의 무리 오백 명이 그 땅에 살고 있었습니다. 용은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창건 후 의상은 이 절에서 사십 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된 부석사 무량수전과 부석사 조사당이 있습니다. 2018년 6월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하나로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 유래

    공중에 뜬 바위

    용이 커다란 바위로 변하여 공중에 떠서 도둑의 무리를 위협함으로써 그들을 모두 몰아내고, 절을 창건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합니다.

    민간 전승
  • 유래

    용이 된 선묘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다가 오히려 보리심을 발하게 된 선묘는 용으로 변하여, 의상이 신라에 도착한 뒤에도 줄곧 옹호하고 다녔다고 합니다.

    민간 전승
  • 파워스폿

    화엄종이 정식으로 열린 자리

    창건 후 의상은 이 절에서 사십 일 동안의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에 대하여 설법함으로써,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치게 되었습니다.

    기록된 역사

절 이름은 뜬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 돌이 무엇이었는지를 설화가 말합니다. 결혼을 청했다가 거절당한 여자가 용이 되어 바다를 건너왔고, 그 용이 커다란 바위로 변해 공중에 떠서 도둑 오백 명을 몰아냈습니다. 땅을 비운 것이 그 바위이고, 절이 선 것은 그다음입니다.

여기서 시작된 것은 절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창건 후 의상은 사십 일 동안 법회를 열고 화엄의 일승십지를 설법하여, 이 땅에 화엄종을 정식으로 펼쳤습니다. 부산 금정산의 범어사도 최치원이 쓴 글에서 해동 화엄종 십찰의 하나로 꼽히는데, 그 계통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자리가 이곳입니다.

경상의 절들에는 창건자의 이름이 몇 개로 좁혀집니다. 이 절과 범어사는 의상이고, 김천 직지사와 구미 도리사는 아도입니다. 신라의 절들은 대개 그 두 이름 가운데 하나에 매여 내려옵니다.

지금 남아 있는 것 가운데 무량수전과 조사당은 1962년에 국보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에는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의 하나로 세계유산에 올랐습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2
  • Uisang founded the temple by royal command in 676 and, after a forty-day assembly here, the Hwaeom school was formally opened in Korea. 기록된 역사
  • The name comes from the account of Seonmyo, turned dragon then rock, hanging in the air to drive five hundred bandits from the site. 민간 전승

관련 가이드

출처

  1. 봉황산 부석사(鳳凰山 浮石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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