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사
모악산 금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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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진표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신 절로, 3층으로 지은 미륵전은 미륵이 펼칠 용화삼회의 설법을 뜻합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금산사는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 있는, 백제 무왕 때 창건한 절입니다. 진표가 762년(경덕왕 21)에 시작하여 766년(혜공왕 2)에 중창을 끝내고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주불로 모셨습니다. 이로써 이 절은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3층의 미륵전은 미륵의 용화삼회의 설법을 의미합니다.
유래와 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금산사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 제30대 무왕 당시 창건한 사찰로 적습니다.
762년(경덕왕 21)에 시작하여 766년(혜공왕 2)에 중창을 끝낸 진표는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주불로 모셨습니다.
이 절은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3층의 미륵전은 미륵의 용화삼회(龍華三會)의 설법을 의미합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층수가 곧 설법의 수
3층의 미륵전은 미륵의 용화삼회의 설법을 의미한다고 사전은 적습니다.
기록된 역사진표의 중창, 762~766
762년에 시작하여 766년에 중창을 끝낸 진표가 미륵장륙상을 조성하여 주불로 모셨습니다.
기록된 역사법상종의 근본 도량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에서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것은 미륵전의 높이입니다. 그런데 그 층수는 크기를 위한 것이 아니라 뜻을 위한 것입니다. 사전은 3층의 미륵전이 미륵의 용화삼회의 설법을 의미한다고 적습니다. 미륵이 뒷날 용화수 아래에서 세 차례 법을 편다는 그 셋이, 건물의 층으로 올라가 있는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여 둘 것이 있습니다. 사전은 이 절이 미륵장륙상을 주불로 모심으로써 법상종의 근본 도량이 되었다고 적습니다. 이는 불교 안에서 이 절이 어떤 자리인가에 대한 말이지, 찾아온 사람이 무엇을 얻는가에 대한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페이지에는 기원의 분류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4
- Geumsansa stands on Moaksan in Gimje and was founded in the reign of King Mu of Baekje. 기록된 역사
- Jinpyo began rebuilding in 762 and finished in 766, making a colossal Maitreya image and enshrining it as the principal buddha. 기록된 역사
- By enshrining that image as its principal buddha, the temple became the root monastery of the Beopsang school. 기록된 역사
- The three storeys of its Maitreya Hall signify the three assemblies of Maitreya’s preaching. 기록된 역사
관련 가이드
- 한국의 절에서 어떻게 참배하나합장과 차수, 절하는 법, 법당에 들어설 때와 나올 때. 일본의 신사 참배와는 다른 점부터 짚습니다.
- 절 안의 작은 집 — 산신각과 삼성각대웅전 뒤편 언덕의 작은 전각에는 호랑이를 거느린 노인이 앉아 있습니다. 불교 사찰 안에 있는 토착 신앙의 자리입니다.
- 템플스테이 — 절에서 하룻밤절에 묵으며 하루를 그곳의 시간표대로 보내는 프로그램. 무엇을 하고, 어떤 유형이 있고, 무엇을 각오해야 하는지.
- 기도처와 「한 가지 소원」3대 관음 기도처, 5대 적멸보궁, 그리고 수능 앞의 갓바위.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말이 어디서 왔고 어디까지가 기록인지.
출처
- 모악산 금산사(母岳山 金山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cademy of Korean Studies (확인일 2026-08-12)
- 김제 금산사 미륵전(金堤 金山寺 彌勒殿)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cademy of Korean Studies (확인일 2026-08-12)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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