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륜산 대흥사
대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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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져 나라의 제향을 받게 된 절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두륜산 대흥사는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입니다. 1655년에 허백 명조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으로부터 모시고 와서 이 절에 전하였습니다. 1788년에 표충의 사액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였고, 이에 정조가 표충사의 사액을 내리고 그 이듬해인 1789년 4월에는 예관을 보내 제향하도록 하였습니다. 『대둔사지』 편찬은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와 아암 혜장과 초의 의순 등에 의해 네 권 두 책으로 1818년경에 편찬되었습니다. 산내 암자로는 북미륵암과 남미륵암과 일지암 등이 있습니다.
유래와 역사
1655년에 허백 명조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으로부터 모시고 와서 이 절에 전하였습니다.
1788년에 표충의 사액을 내려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정조가 표충사의 사액을 내리고, 그 이듬해인 1789년 4월에는 예관을 보내 제향하도록 하였습니다.
『대둔사지』 편찬은 유배생활을 하던 다산 정약용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와 아암 혜장과 초의 의순 등에 의해 네 권 두 책으로 1818년경에 편찬되었습니다.
산내 암자로는 북미륵암과 남미륵암과 일지암 등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표충의 사액과 국가 제향
1788년에 표충의 사액을 청하자 정조가 표충사의 사액을 내리고, 이듬해 사월에는 예관을 보내 제향하도록 하였습니다.
기록된 역사묘향산에서 온 옥발우
1655년에 허백 명조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으로부터 모시고 와서 이 절에 전하였습니다.
기록된 역사『대둔사지』의 편찬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용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와 아암 혜장과 초의 의순 등에 의해 1818년경 네 권 두 책으로 편찬되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이 나라의 제향을 받게 된 것은 한 사람의 이름 때문입니다. 1788년에 표충의 사액을 청하였고 정조가 표충사의 사액을 내렸으며, 이듬해 사월에는 예관을 보내 제향하도록 하였습니다. 절 안의 사당이 국가의 의례를 받는 자리가 된 것입니다.
같은 이름의 사당이 경상에도 있습니다. 밀양 표충사는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의 이름을 절이 그대로 가져다 쓴 곳입니다. 이곳이 받드는 서산대사는 사명대사의 스승이니, 스승과 제자가 각각 표충이라는 같은 이름을 받은 셈입니다.
물건 하나가 먼 데서 왔습니다. 1655년에 허백 명조가 서산대사의 옥발우를 묘향산에서 모시고 와 이 절에 전하였습니다.
이 절에 딸린 절 가운데 하나가 강진 무위사입니다. 그곳 극락보전의 아미타여래삼존벽화는 그림 좌우 하단에 적힌 기록에 따라 1476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차와 글에 관한 내력도 있습니다. 『대둔사지』는 유배 중이던 정약용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완호 윤우와 아암 혜장과 초의 의순 등이 1818년경에 네 권 두 책으로 엮은 것입니다. 정약용과 초의는 경기 남양주 수종사를 찾았던 사람들로도 함께 적혀 있습니다.
관련 가이드
- 한국의 절에서 어떻게 참배하나합장과 차수, 절하는 법, 법당에 들어설 때와 나올 때. 일본의 신사 참배와는 다른 점부터 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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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두륜산 대흥사(頭輪山 大興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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