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대
관악산 연주대 · 연주암 · 관악사
AI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설명에 출처를 달았지만 오류가 남을 수 있으니, 개방 시간·요금·폐쇄 여부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소개
한 줄 요약
관악산 절벽 끝의 암자로, 고려를 그리며 송도 쪽을 바라보고 통곡했다는 이들에게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경기 과천시 중앙동 산12-4
- 모시는 신
- 의상(義湘, 625~702)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연주대는 경기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암자입니다. 677년 의상이 창건하여 관악사라 하였고, 1392년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한 뒤 그의 처남 강득룡이 연주대라 불렀다고 전합니다. 강득룡·서견·남을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고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입니다. 1973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래와 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연주대를 경기도 과천시 관악산 연주봉에 있는,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이 창건한 암자로 적습니다. 677년(문무왕 17)에 의상이 창건하여 관악사라 하였습니다.
1392년(태조 1) 이성계가 의상대를 중건하였고, 그의 처남인 강득룡이 이를 연주대라고 불렀습니다. 강득룡·서견·남을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면서 통곡하였기 때문에 연주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합니다.
1973년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과 관음전, 영산전, 연주대(응진전), 삼성각 등이 있고,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677년, 관악사라는 이름으로
의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처음 이름은 관악사였습니다.
기록된 역사연주대라는 이름
강득룡·서견·남을진 등이 이곳에서 송도를 바라보며 고려왕조를 연모하고 통곡하였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라고 전합니다.
민간 전승절벽 끝의 응진전
대웅전·관음전·영산전과 함께 연주대(응진전)가 있고, 효령대군의 진영을 봉안한 효령각이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곳이 무엇을 비는 자리인지, 국가 기록은 말하지 않습니다. 창건과 개명과 이름의 유래까지가 적혀 있고, 사람들이 여기서 무엇을 구했는지는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페이지에는 기원의 분류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남는 것이 이름입니다. 연주(戀主)는 주군을 그리워한다는 뜻이고, 그 이름은 왕조가 바뀐 뒤 이 절벽에 올라 옛 도읍 쪽을 바라보며 울었다는 사람들에게서 왔습니다. 새 왕조를 연 이성계가 고쳐 세운 자리에, 그 왕조를 인정하지 않은 이들의 슬픔이 이름으로 남은 셈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이곳을 시험이나 승진의 기도처로 소개하는 글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국가 기록에는 없습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4
- Uisang founded the hermitage on Yeonjubong in 677 under the name Gwanaksa. 기록된 역사
- In 1392 Yi Seong-gye rebuilt the Uisangdae, and his brother-in-law Kang Deuk-ryong gave it the name Yeonjudae. 기록된 역사
- The name is said to derive from Kang Deuk-ryong, Seo Gyeon, Nam Eul-jin and others who looked from here toward Songdo, longing for the Goryeo dynasty, and wept. 민간 전승
- It was designated a Gyeonggi provincial monument in 1973; the halls include the Yeonjudae itself and the Hyoryeonggak enshrining a portrait of Grand Prince Hyoryeong. 기록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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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관악산 연주암(冠岳山 戀主庵)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cademy of Korean Studies (확인일 2026-08-12)
- 아산 이충무공 유허 — 국가유산포털 — Korea Heritage Service (확인일 2026-08-12)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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