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보산 회암사지
회암사
AI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설명에 출처를 달았지만 오류가 남을 수 있으니, 개방 시간·요금·폐쇄 여부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소개
한 줄 요약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 이백예순여섯 칸으로 지었다가 폐사가 된 절터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길 281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천보산 회암사지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는 절터입니다. 1328년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서 이백예순여섯 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에는 나옹이 중건하였습니다. 회암사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로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대의 불교 사상과 문화를 주도하였습니다. 조선 전기 왕실의 보호를 받던 절로,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에 머무르면서 수도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문정왕후 이후 불교계의 쇠퇴 분위기 속에 회암사도 쇠락하면서 서서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는 지공과 나옹의 승탑과 함께 무학대사의 묘탑이 서 있습니다. 양주 회암사지는 사적으로, 무학대사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유래와 역사
1328년에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서 이백예순여섯 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으며, 1378년에는 나옹이 중건하였습니다.
회암사는 고려 말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로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대의 불교 사상과 문화를 주도하였습니다. 조선 전기 왕실의 보호를 받던 절로,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에 머무르면서 수도하던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문정왕후 이후 불교계의 쇠퇴 분위기 속에 회암사도 쇠락하면서, 서서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는 지공과 나옹의 승탑과 함께 무학대사의 묘탑이 서 있습니다. 양주 회암사지는 사적으로, 무학대사탑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나란타사를 본뜬 이백예순여섯 칸
1328년에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서 이백예순여섯 칸의 대규모 사찰로 중창하였습니다.
기록된 역사전국 최대 규모의 절
고려 말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전국 최대 규모의 사찰로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태조 이성계가 늙은 후 머무르며 수도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능선 위의 세 탑
절터의 북쪽 능선 위에는 지공과 나옹의 승탑과 함께 무학대사의 묘탑이 서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터의 규모는 숫자로 남아 있습니다. 1328년에 지공이 인도의 나란타사를 본떠 이백예순여섯 칸으로 중창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원나라를 거쳐 온 사람이 인도의 절을 본떠 고려에 지은 절이며,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까지 전국에서 가장 큰 절이었습니다.
경기의 절들은 칸수와 함께 기록되는 일이 잦습니다. 남양주 봉선사는 여든아홉 칸, 여주 신륵사는 이백여 칸이며, 서울 흥천사는 백칠십여 칸이었습니다. 왕실이 관여한 절일수록 크기가 함께 적혀 있습니다.
다만 이 절은 그 크기를 잃었습니다. 문정왕후 이후 불교계가 쇠퇴하는 가운데 서서히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기록은 적습니다. 불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천천히 비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 페이지의 분류는 절이 아니라 유적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능선 위의 탑들입니다. 지공과 나옹의 승탑, 그리고 무학대사의 묘탑이 나란히 서 있습니다. 나옹에 대해서는 여기 기록이 1378년에 중건했다고 적고, 여주 신륵사의 기록은 그가 1376년에 그곳에서 입적했다고 적습니다. 두 기록이 맞물리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각각 적힌 대로 둡니다.
출처
- 천보산 회암사(天寶山 檜巖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비슷한 장소
8곳
사찰운악산 봉선사
왕비가 죽은 임금의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여든아홉 칸으로 다시 세운 절입니다.
사찰고령산 보광사
- 가정
영조가 자기를 낳은 어머니의 무덤을 위해 원찰로 삼은 절입니다.
사찰도선사
- 소원 성취
도선이 862년에 창건하고 바위를 갈라 새겼다는 마애관음보살상이 있으며, 영험이 있다 하여 축수객이 끊이지 않는 절입니다.
사찰삼각산 화계사
이백오십 년 사이에 두 사람의 대원군이 각각 시주한 절입니다.
사찰북한산 진관사
칠성각 벽체 안에서 태극기가 나온 절입니다.
사찰북한산 승가사
인도에서 당나라로 건너간 승려의 초상을 돌에 새겨 모신 절입니다.
사찰삼각산 흥천사
태조가 죽은 왕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능 동쪽에 백칠십여 칸으로 세운 절입니다.
신사·사당동관왕묘
- 액막이
임진왜란 뒤 관우를 모시려 세운 사당으로, 서울의 네 관왕묘 가운데 유일하게 남았습니다.
조건에 맞는 장소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