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 부인사

사찰 · 대구

AI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설명에 출처를 달았지만 오류가 남을 수 있으니, 개방 시간·요금·폐쇄 여부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소개

한 줄 요약

피난시켜 온 초조대장경 경판을 1232년 몽골 침입으로 모두 잃은 절입니다.

A watercolour of a Korean temple hall on a wooded slope behind a weathered stone pagoda, with old foundations in the grass.
AI로 생성한 그림
Illustration: Power Spot Map (Z-Image-Turbo)

기본 정보

주소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로 967-28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팔공산 부인사는 대구광역시 동구 팔공산에 있는 절로,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려 『초조대장경』의 소장처였습니다. 대장경판은 처음에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하였으나, 거듭되는 북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1232년의 몽골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부인사 서탑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입니다.

유래와 역사

팔공산 부인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당시 창건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절은 고려 『초조대장경』의 소장처였습니다. 대장경판은 처음에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하였지만, 거듭되는 북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팔공산 부인사에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그러나 1232년의 몽골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고, 부인사 서탑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 유래

    피난 온 경판

    대장경판은 처음에 흥왕사 대장전에 보관하였으나, 거듭되는 북쪽 이민족의 침입으로 인하여 이곳으로 옮겨 봉안하였습니다.

    기록된 역사
  • 유래

    1232년의 소실

    1232년의 몽골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소실되고 말았습니다.

    기록된 역사
  • 여기서 사람들이 하는 것

    남은 터와 탑

    부인사지는 대구광역시 기념물로, 부인사 서탑은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에 대장경판이 온 것은 안전을 위해서였습니다. 처음에는 흥왕사 대장전에 있던 것을, 북쪽 이민족의 침입이 거듭되자 이곳으로 옮겨 봉안했습니다. 그리고 1232년의 몽골 침입으로 경판은 모두 탔습니다. 지키려고 옮긴 자리에서 잃은 셈입니다.

그 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이 사이트의 다른 페이지가 말해 줍니다. 합천 해인사가 소장한 대장경판은 몽골의 침입을 물리치려는 뜻으로 새긴 것입니다. 여기서 탄 것이 첫 번째였고, 저기에 있는 것이 그 다음입니다. 두 절의 페이지가 하나의 상실과 그 이어짐을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대구의 절들에는 감추고 옮기는 이야기가 자주 나옵니다. 달성 용연사의 사리는 임진왜란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겨졌다가 돌아오는 길에 나뉜 것이고, 앞산 은적사는 왕건이 사흘 동안 숨었던 굴에서 이름을 얻었습니다. 이 절은 그중 옮겼으나 지키지 못한 쪽입니다.

지금 남은 것은 터와 탑입니다. 부인사지가 대구광역시 기념물이고, 서탑이 유형문화유산입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2
  • The woodblocks of the first Tripitaka were moved here from Heungwangsa because of repeated invasions from the north. 기록된 역사
  • They were entirely destroyed in the Mongol invasion of 1232. 기록된 역사

관련 가이드

출처

  1. 팔공산 부인사(八公山 符仁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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