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악산 직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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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아도가 다른 절에서 이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는 데서 이름이 난 절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황악산 직지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입니다. 418년에 아도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1681년에 조종저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여덟 전과 세 각과 열두 당과 세 장과 네 문에 정실만 삼백쉰두 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스물여섯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명각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열다섯 살에 이 절에서 출가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그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유래와 역사
직지사는 418년에 아도가 창건했다고 합니다.
직지사라고 한 데는 세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것입니다.
1681년에 조종저가 쓴 사적기에 의하면, 당시의 규모가 여덟 전과 세 각과 열두 당과 세 장과 네 문에 정실만 삼백쉰두 칸에 달했으며, 부속 암자는 스물여섯 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명각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곳입니다. 열다섯 살에 이 절에서 출가하여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그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창건하고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여 직지사로 불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민간 전승삼백쉰두 칸의 기록
1681년에 조종저가 쓴 사적기에는 여덟 전과 세 각과 열두 당과 세 장과 네 문에 정실만 삼백쉰두 칸, 부속 암자 스물여섯 개로 적혀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사명당이 출가한 절
사명각은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 사명당의 영정을 모신 곳으로, 열다섯 살에 이 절에서 출가한 그의 뜻을 되새기기 위해 건립한 것입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의 이름은 손가락에서 나왔습니다. 전하는 세 가지 설 가운데 하나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선산 도리사를 세운 뒤 황악산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저쪽에 큰 절이 설 자리가 있다고 하였고, 그래서 직지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곧바로 가리킨다는 뜻입니다.
그 손가락이 놓여 있던 자리도 이 사이트에 있습니다. 구미 도리사는 아도가 세운 절로, 신라 최초의 사찰로 전해 오는 곳입니다. 두 절의 기록이 서로를 가리키고 있는 셈입니다.
경상의 옛 절들은 창건자의 이름이 몇 개로 좁혀집니다. 이 절과 도리사는 아도이고, 영주 부석사와 부산 범어사는 의상입니다.
규모는 숫자로 남아 있습니다. 1681년 사적기에는 여덟 전과 세 각과 열두 당과 세 장과 네 문, 정실만 삼백쉰두 칸, 부속 암자 스물여섯 개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명당이 열다섯에 출가한 곳도 이 절이며, 사명각은 그 뜻을 되새기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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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황악산 직지사(黃嶽山 直指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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