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슬산 용연사
AI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설명에 출처를 달았지만 오류가 남을 수 있으니, 개방 시간·요금·폐쇄 여부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소개
한 줄 요약
전란을 피해 옮겨졌던 통도사 부처사리의 일부를 돌아오는 길에 모셔와 봉안한 절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 용연사길 260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비슬산 용연사는 대구광역시 달성군 옥포읍에 있는 절입니다. 이곳의 금강계단은 불사리를 봉안한 계단으로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습니다. 1673년에 높이 5척 5촌의 계단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통도사 불사리계단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석가여래비에 따르면 이 계단은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며, 계를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보존할 수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 금강계단이라 부릅니다.
유래와 역사
이곳의 금강계단은 불사리를 봉안한 계단으로, 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 부처사리를, 사명대사의 제자 청진이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습니다.
1673년에 높이 5척 5촌의 계단을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통도사 불사리계단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다만 석가여래비에 따르면 이 계단은 광해군 5년인 1613년에 완성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은 부처가 항상 그곳에 있다는 상징성을 띠며, 계를 금강과 같이 견고하게 보존할 수 있는 곳에 불사리를 봉안한 것이 으뜸이라는 뜻에서 금강계단이라 부릅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돌아오는 길에 모신 일부
난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겼던 통도사 부처사리를 다시 통도사로 옮길 때, 용연사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이곳에 봉안하였습니다.
기록된 역사통도사 계단을 본뜬 형태
이곳의 금강계단은 통도사 불사리계단의 형태를 본떠 만들었습니다.
기록된 역사맞지 않는 두 완성 연대
1673년에 조성하였다는 기록이 있고, 석가여래비는 1613년에 완성되었다고 적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곳의 사리는 여행 중에 나뉜 것입니다. 임진왜란을 피해 묘향산으로 옮겨졌던 통도사의 부처사리가 다시 통도사로 돌아가는 길에, 용연사 승려들이 그 일부를 모셔와 여기 봉안했습니다. 옮기는 도중에 갈라진 몫이 이 절의 계단에 들어 있는 셈입니다.
이 사이트에는 그 사리가 원래 있던 곳도 실려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는 금강계단으로 이름난 절이고, 여기 계단은 그 형태를 본떠 만든 것입니다. 물건도 모양도 저쪽에서 왔습니다.
같은 대구의 부인사는 이 이야기의 반대편입니다. 그쪽은 북쪽의 침입을 피해 대장경판을 옮겨 왔다가 1232년에 모두 잃었습니다. 한쪽은 옮겨서 살아남아 나뉘었고, 한쪽은 옮겨서도 타 버렸습니다.
완성 연대는 두 가지가 전합니다. 1673년에 조성했다는 기록이 있고, 석가여래비는 1613년에 완성되었다고 적습니다. 두 기록이 맞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각각 적힌 대로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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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달성 용연사 금강계단(達城 龍淵寺 金剛戒壇)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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