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
가야산 해인사
AI의 도움을 받아 조사하고 번역했습니다. 모든 설명에 출처를 달았지만 오류가 남을 수 있으니, 개방 시간·요금·폐쇄 여부는 공식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소개
한 줄 요약
몽골군을 물리치려는 온 나라의 염원으로 새긴 팔만대장경과, 그것을 지켜 온 장경판전이 있는 절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해인사는 경남 합천군 가야산에 있는 절입니다.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자 고려 고종 때 다시 새긴 대장경판 81,258매를 보관하고 있습니다. 대장경판은 국보이며, 이를 봉안한 장경판전은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건물로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유래와 역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해인사 대장경을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소장된 고려시대의 대장경 목판으로 적습니다. 1232년 몽고의 침입으로 초조대장경이 불타 버리자 고려 고종 때(1237~1248) 다시 새긴 것입니다.
1237년부터 1248년 사이에 새긴 81,258매이며, 세로 24cm, 가로 68~78cm, 두께 2.5~3cm입니다. 국보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고려대장경판을 봉안한 장경각은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건물로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대장경판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나라를 지키려는 기원으로 새기다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하려는 민족적인 염원에서 국력을 기울여 한 자 한 자 판각하였다고 사전은 적습니다.
기록된 역사81,258매의 경판
1237년부터 1248년 사이에 새겼습니다. 세로 24cm, 가로 68~78cm, 두께 2.5~3cm입니다.
기록된 역사장경판전
경판을 봉안한 건물로, 과학적이고 완전무결한 건물로 평가되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과 액막이가 이어지는 근거는 대장경을 왜 새겼는가에 있습니다. 사전은 몽골군의 침입을 격퇴하려는 민족적인 염원에서 국력을 기울여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하여 판각하였다고 적습니다. 나라를 지키려는 기원이 8만 장의 나무판에 새겨진 셈이고, 그 기원은 전해 오는 이야기가 아니라 기록에 적힌 목적입니다.
한 가지 구분해 둘 것이 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은 대장경판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판전이고, 세계기록유산은 그 안에 든 대장경판입니다. 건물과 내용물이 서로 다른 목록에 올라 있습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4
- Haeinsa holds 81,258 Tripitaka woodblocks, re-carved under King Gojong between 1237 and 1248 after the first set burned in the Mongol invasion of 1232. 기록된 역사
- The encyclopedia records that the blocks were carved character by character, with the strength of the state behind them, out of a national wish to repel the Mongol invasion. 기록된 역사
- Each block measures 24 cm high, 68–78 cm wide and 2.5–3 cm thick; the set is designated a National Treasure. 기록된 역사
- The depository is inscribed as UNESCO World Heritage and the blocks themselves are on the Memory of the World register. 기록된 역사
관련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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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해인사 대장경(海印寺 大藏經)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cademy of Korean Studies (확인일 2026-08-12)
-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Academy of Korean Studies (확인일 2026-08-12)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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