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관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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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 요약
한라산 기슭의 조계종 제23교구 본사로,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이 세운 절입니다.

기본 정보
- 주소
-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산록북로 660
- 모시는 신
- 관음보살(觀音菩薩)
이곳은 어떤 곳인가요
한라산 관음사는 제주시 아라동에 있는 절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제23교구 본사입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창건자와 창건 연대를 알 수 없다고 적고,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시켰을 때 이 절도 폐허가 되었다고 씁니다. 지금의 관음사는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이 창건한 것입니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사경에 이르렀을 때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1908년 제주도로 돌아와 4월에 경찬재를 열었는데, 이후 주민들이 반대하여 죽이려 하므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이듬해 봄 이곳에 절을 세웠습니다. 1910년에는 용화사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봉안했습니다. 1949년 1월 제주4·3으로 전소되었고, 1968년에 중창했습니다. 현재 제주도의 말사 약 30여 개를 관장합니다.
유래와 역사
창건자와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조선 숙종 때 제주목사였던 이형상이 제주에 잡신이 많다 하여 많은 사당과 함께 사찰 500동을 폐사시켰을 때 이 절이 폐허가 되었다고 사전은 적습니다.
지금의 관음사는 1909년 봄 비구니 봉려관이 창건한 것입니다. 봉려관은 제주도 사람으로, 1901년 비양도로 가는 길에 우연히 풍랑을 만나 사경에 이르렀을 때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1907년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1908년 제주도로 돌아와 4월에 경찬재를 열었습니다. 이후 주민들이 반대하여 죽이려 하므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1909년 봄 한라산에 관음사를 창건했습니다. 1910년에는 용화사에서 불상과 탱화를 모셔와 관음사에 봉안했습니다.
1949년 1월 제주4·3으로 절이 모두 탔고, 1968년에 중창했습니다. 지금은 조계종의 본사로서 제주도의 말사 약 30여 개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비는 소원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
봉려관은 1901년 비양도로 가는 길에 풍랑을 만나 사경에 이르렀다가 살아난 뒤 1907년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민간 전승피신의 끝에 세운 절
1908년 경찬재를 연 뒤 주민들이 반대하여 죽이려 하므로 한라산으로 피신했다가, 1909년 봄에 이곳에 절을 세웠습니다.
기록된 역사제23교구 본사
지금은 조계종의 본사로서 제주도의 말사 약 30여 개를 관장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역사
이 절의 내력에는 빈 자리가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창건자와 창건 연대가 없다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이형상이 사당과 절을 함께 없앨 때 폐허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이트가 다루는 지역 가운데, 종교의 자리가 관의 손으로 한 번 지워졌다가 다시 세워진 곳은 제주뿐입니다. 같은 제주의 법화사도 같은 목사의 이름을 자기 내력에 적어 두고 있습니다.
다시 세운 사람은 여자였습니다. 봉려관은 바다에서 죽을 뻔했다가 살아난 뒤 비구니가 되었고, 섬으로 돌아와 재를 열었다가 주민들의 반대로 목숨이 위태로워지자 한라산으로 피했습니다. 절은 그 피신의 끝에 세워졌습니다. 한 교구의 본사가, 창건자가 쫓겨 올라간 자리에서 시작된 셈입니다.
무엇을 빌 수 있는 절인지도 그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사전이 적은 것은 이로움의 목록이 아니라 한 문장, 관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나게 되자입니다. 물에서 건져진 일이 이 절의 시작에 놓여 있습니다.
1949년 1월, 절은 제주4·3으로 모두 탔습니다. 1968년의 중창은 그 뒤의 일입니다. 이 섬에서 절이 사라진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습니다.
설명과 근거 수준 2
관련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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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라산 관음사(漢拏山 觀音寺)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확인일 2026-08-16)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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